변명이 먹힐 시기는 오래 전에 지났다. (사진 -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FC)

 

상대는 전원이 수비를 했다. 공격보다 수비를 하는 것이 더 쉽다.”

 

15/16 잉글랜드 FA3라운드 셰필드 유나이티드 전이 끝난 후 루이스 반 할 감독은 자신의 팀에 쏟아진 비판에 대해 이렇게 답했다. 9~10명이 수비에 집중한 팀을 상대로 골을 넣는 것은 어려운 일이며, 그것을 뚫고 승리했으니 칭찬받아 마땅하다는 논리다. 일면 타당해 보이는 주장이다.

 

그러나 반 할 감독의 이 말에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공감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 반 할 감독의 주장이 한심한 변명으로 느껴지는 세 가지 이유가 있기 때문이다.

 

첫째, 셰필드는 3부리그 팀이다. 1부리그인 프리미어리그와 2부리그 챔피언십리그보다도 아래에 있는 풋볼리그1에서조차 9위를 기록하고 있는 팀이다. 이런 팀이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와 같은 거함을 상대로 전원 수비에 나설 것이라는 것은 삼척동자도 예상할 수 있는 일이었다.

 

만약 반 할 감독이 셰필드가 전원 수비로 나올 것을 예상하지 못했다면 그것은 감독으로서의 상대 분석 능력에 문제가 있는 것이고, 예상하고도 해법을 찾지 못했다면 전술 능력에 문제가 있는 것이다. 18천만 파운드에 달하는 돈을 퍼붓고도 3부리그 팀의 ‘10하나 뚫을 수 없는 선수단을 만들었다면 이적 정책에 문제가 있는 것이다. 그러나 반 할 감독은 이런 자신의 실착은 모두 숨겨둔 채, 3부리그 9위 팀이 전원 수비를 했다는 사실 하나만 갖고 스스로를 옹호했다. 이는 맨유처럼 리그 우승, 나아가 유럽 제패를 노리는 팀의 감독이 할 만한 변명이 아니다.

 

둘째, 맨유의 지루한 축구에 대한 비판이 셰필드 전에 국한된 이야기가 아니라는 점이다. 지금까지 좋은 경기력을 펼치던 팀이 상대의 전원 수비에 막혀 졸전을 펼친 것이라면 반 할 감독의 말에도 설득력이 깃들 수 있다. 하지만 올 시즌 맨유 팬들은 거의 예외 없이 지루한 축구와 싸우고 있다. 셰필드 전 졸전에 대한 비판도 그 연장선상에 있다.

 

그런데 반 할 감독은 이런 사실을 애써 무시하며, 셰필드가 수비에 집중한 탓에 졸전을 펼칠 수밖에 없었다고 말했다. 팀 컬러 자체에 대한 비판을 교묘하게 셰필드 전에 대한 비판으로 축소시키고, 그에 대해서만 해명하는 철저히 수사학적인 방어 전략을 사용한 것이다. 진실성 없는 사과와 반성, 남 탓은 축구계에서 존경 받는 거장이 해서는 안 되는 행동이다.

 

마지막으로, 반 할 감독의 전술 자체가 상대에게 쉽게 수비할 수 있는상황을 만들어준다는 점이다. 여러 차례 언급한 대로, 반 할 감독의 축구는 지속적으로 볼을 소유하다가 소위 파이널 서드지역이라고 하는 상대 위험 지역에서 기어를 변속해 수비를 무너뜨리는 데 초점을 맞춘다. 일단 상대를 자기 진영에 몰아넣고, 속도와 창의성으로 기회를 창출하는 것이다.

 

이러다 보니 상대는 자연스럽게 페널티 박스 앞에서 수비를 정돈하고 맨유를 맞이할 수밖에 없고, 역으로 맨유는 잘 정돈된 상대 수비 앞에서 공격을 펼칠 수밖에 없다. 빠른 공수 전환으로 공간을 창출하는 축구 대신 느리더라도 안정적으로 상대 진영에 돌입해서 창의적으로 기회를 만드는 축구를 펼치는 까닭에, 맨유 선수들은 매 경기 상대의 두터운 수비벽과 좁은 공간을 극복해야만 하는 것이다. 그러나 지금 맨유에는 그럴 만한 역량을 가진 선수가 없고, 이것이 지루한 축구와 반 할 감독의 선수 탓으로 연결되고 있다.

 

지금 맨유의 선수단을 구축한 사람은 반 할 감독 본인이고, 지금의 전술을 만든 사람도 반 할 감독 본인이다. 이런 상황 속에서 남 탓으로 일관하는 모습은 팬들은 물론 선수들에게도 신뢰를 주기 어렵다. 겨울 이적 시장을 통해 팀에 꼭 필요한 크랙을 영입하든, 전술을 바꿔 현재 보유한 자원의 역량을 100% 살리는 쪽을 택하든, 반 할 감독 본인이 고민하고 선택하고 책임져야 한다는 사실만큼은 분명히 기억해야 하지 않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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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온스테이지 2016.01.11 14:39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빨리 자르고 무리뉴 데려오는게 이득일거 같은데 왜 참고 있는지 이해가 안 되네요
    모예스는 일찌감치 짜르더만

    • Contents Provider Breakaway 2016.01.24 10:14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모예스에 비해 빅 클럽에서 검증된 감독이라는 점도 있고, 지난 시즌 4위라는 성적도 있고, 두 번 연속 감독을 중도하차시킨다는 부담도 있고 여러 가지가 작용하는 것 같습니다. 하지만 이제 때가 된 것 같다는 생각이 들긴 하네요.

      좋은 의견 남겨 주셔서 감사드립니다^^

  2. Phil99 2016.01.13 15:44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잘 봤습니다.

    저도 왜 맨유 보드진이 반할을 경질 안시키나 하는 생각을 했었는데,
    현재 나오고 있는 썰들 중에 제 생각에 가장 유력한것은, 퍼거슨이 추천한 모예스가 실패하면서 구단 내 퍼거슨의 입지가 줄어들었는데, 이번에 반할을 선택한 우드워드가 퍼거슨처럼 되는 것을 두려워 한다. 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구단 내부의 파워 싸움도 있을수 있다고 생각되네요.
    저도 맨유팬은 아닌지라 자세히는 알지 못하지만, 상식적으로 무리뉴 같은 감독이 대놓고 맨유 감독직 원한다고 의사 표현했는데 정치적인 이유가 있는게 아니라면 반할을 경질 안 할 이유가 없죠.

  3. 레지스타 2016.01.15 01:16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개인적인 생각인데 네덜란드라는 나라의
    이미지는 자유롭고 합리적인 사고로 대표
    되지만 반대로 네덜란드 출신 축구 감독들의
    성향은 정반대로 축구라는 스포츠 자체에
    완고하고 보수적인듯 합니다. 반할은 특히
    더 그런 느낌인데 팀을 운영함에 있어서
    하나의 전술적 모델을 만들어놓고 그
    모델에 따라서만 운영하며 팀으로써만
    싸우려 드는거죠. 문제는 그게 막혔을때 틀을
    깨고 나와서 무쌍난무를 펼쳐줄 '크랙'이
    없다는건데 크랙의 역할을 할 수 있는 선수가
    있어도 쓸 생각도 쓰는 방법도 모르는게
    반할이라고 봅니다. 또 문제가 발견되면
    문제있는 부분을 수정하는게 아니라
    전체를 다 바꾸려 들기에 또다시 시행
    착오를 겪는다는거죠. 아드보카트도
    그렇고, 쿠에만, 말베이크에게서도
    공통적으로 드러나는 부분. 거기서
    진짜 이례적으로 유연한 감독이 바로
    히딩크 감독이라고 보는데 그런 히딩크
    조차도 경기중의 기책에 능한 정도지
    남유럽이나 남미 명장들에 비하면
    딱딱한 편이라 느껴집니다.

    • Contents Provider Breakaway 2016.01.24 10:17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개인적으로는 네덜란드 출신의 특징이라기보다는(히딩크만 해도 상당히 유연한 감독이죠) 크루이프이즘을 따르는 감독들의 특징 같기도 합니다. 크루이프 본인도 그렇고 반 할도 그렇고 과르디올라도 그렇고 아이디얼리스트적인 성향이 강하죠.

      좋은 의견 남겨 주셔서 감사드립니다^^

 

천재일우(遇) (사진 - 아스널 FC)

 

아스널의 질주가 심상치 않다. 어제 뉴캐슬 전에서 승리를 거둔 그들의 최근 5경기 성적은 41. 불의의 일격을 당한 사우스햄튼 전을 제외하면 5전 전승 10득점 2실점을 기록하고 있다. 이 기간 동안 레스터 시티를 제치고 선두 자리를 탈환하며 순위 싸움에서도 유리한 고지를 점령했다.

 

이러다 보니 아스널이 12년 만에 리그 우승을 차지할 수도 있다는 희망 섞인 전망이 나온다. 지난 10년간 반환점을 돈 시점(19라운드)에서의 선두 팀이 우승을 차지한 경우가 대부분이었다는 통계도 그렇거니와, 외부 환경도 아스널에게 불리할 것이 없는 상황이기 때문이다.

 

올 시즌이 아스널에게 주어진 절호의 기회로 평가되는 이유는 두 가지다. 우선 외적으로, 이른바 전통의 강호들이 부진에서 헤어 나오지 못하고 있다. 선두와 승점 19점 차로 멀어져 있는 디펜딩 챔피언첼시는 현실적으로 빅4 진입조차 쉽지 않아 보이고,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는 루이 반 할 감독의 경질설이 심심찮게 들릴 정도로 내환을 앓고 있다.

 

리버풀은 선수단 자체가 우승 경쟁 팀이라고 보기 어려운 데다, 아직 위르겐 클롭 감독의 색깔을 입히고 있는 과도기의 팀이다. 선수층이 얇은 레스터의 돌풍도 점점 사그라지고 있다는(최근 3경기 21) 점까지 고려하면, 사실상 아스널의 우승 경쟁자는 맨체스터 시티 한 팀만 남아있는 셈이다. 게다가 맨시티조차도 다음 시즌 호셉 과르디올라 감독 부임설이 돌고 있는 팀. 첼시와 맨유, 리버풀, 맨시티 모두 감독이 교체됐거나 교체설이 나오고 있는 팀인 만큼, 아스널 입장에서 올 시즌은 천재일우라고 봐야 한다.

 

내적으로도 아스널은 탄탄한 체질을 갖춰놓은 상태다. 지난 시즌 최소 실점 3위를 기록할 정도로 안정적이었던 수비진은 페트르 체흐의 합류로 한 차원 더 수준을 높였고, 프란시스 코클랭이 등장한 이후부터는 중원도 밸런스를 찾았다. 알렉시스 산체스와 메수트 외질을 중심으로 한 공격진의 생산력은 어디에도 뒤지지 않는다. 부상만 없다면, 전력상으로도 충분히 우승에 도전할 수 있는 경쟁력 있는 선수단을 만들어 놓았다는 이야기다.

 

그러나 불안요소도 있다. 첫 번째는 부상만 없다면이라는 전제다. 어제 뉴캐슬 전에서 아스널은 산티 카솔라와 코클랭, 산체스 없이 경기를 치렀다. 중원에서 밸런스를 잡아주고 포백을 보호하는 역할을 하는 코클랭과 전체적인 경기를 조율하는 카솔라, ‘리썰 웨폰산체스가 모두 빠지다 보니 아스널 특유의 경기력을 발휘하기 어려웠다. 그동안 매번 우승 문턱에서 발목을 잡혔던 이유가 주전 선수들의 끊이지 않는 부상이었음을 상기하면, 핵심 선수들의 컨디션 관리는 12년 만의 우승 탈환을 노리는 아스널에게 가장 중요한 과제일 수밖에 없다.

 

또 하나는 원톱 문제다. 물론 올리비에 지루는 좋은 선수고, 오히려 과소평가 받고 있는 스트라이커다. 올 시즌 지루는 20골 페이스를 보이고 있는데, 지난 시즌 프리미어리그에서 20골 이상을 넣은 선수는 세르히오 아구에로와 해리 케인, 디에고 코스타밖에 없었다.

 

그럼에도 지루가 아스널의 약점으로 거론되는 것은, 경기가 잘 풀릴 때와 그렇지 않을 때의 편차가 너무 크기 때문이다. 플레이 스타일상 경기 양상이 답답할 때 스스로 돌파구를 만들어내는 능력이 없고, 해결사 역할도 해주지 못하는 까닭에 기복이 심해보이는 면이 있다. 중상위권 팀의 스트라이커라면 이만한 선수도 없지만, 매 경기 승리를 노려야 하는 우승권 팀 스트라이커라면 해결사적인 면모가 더 강해야 한다. 만약 아스널이 겨울 이적 시장을 통해 A급 스트라이커를 영입하고 지루를 벤치 멤버로 대기시킬 수 있다면, 아스널의 리그 우승은 결코 먼 일이 아닐 것이다.

 

올 시즌 아스널은 우승을 위한 최적의 기회를 잡았다. 스스로도 탄탄한 전력을 갖췄고, 경쟁 팀들이 내우외환에 시달리고 있는 덕분이다. 과연 아스널이 번번이 발목을 잡았던 약점을 극복하고 다시 한 번 리그 우승 트로피를 들어 올릴 수 있을지 지켜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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