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렉스 퍼거슨 감독은 대외적으로 알려진 이미지와는 달리 매우 유연한 사고방식을 갖춘 지도자다. 이는 그가 20년이 넘는 기간 동안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이하 맨유)를 세계 최정상의 클럽으로 이끌어 왔다는 사실에서도 쉽게 유추가 가능한데, 하나의 클럽을 계속해서 성공으로 이끄는 것은 변화를 두려워 하지 않는 혁신성 없이는 불가능한 일이기 때문이다.


잉글랜드식 정통 4-4-2의 신봉자였던 알렉스 퍼거슨 감독이 대륙식 축구에 관심을 기울이기 시작한 것은 2004년 부터였다. 퍼거슨 감독은 데이빗 베컴과 후안 세바스티안 베론을 각각 레알 마드리드와 첼시로 이적시키고 루드 반 니스텔루이를 원톱에 두고 긱스와 스콜스, 그리고 호나유지뉴로 하여금 그 뒤를 받치게 하는 4-2-3-1을 구상했다. 비록 호나우지뉴를 바르셀로나에게 빼앗기면서 실패로 귀결됐지만, 4-2-3-1의 시도는 퍼거슨 감독이 대륙식 축구의 접목을 시도했다는 상징적인 사건이었다.


루드 반 니스텔루이가 팀을 떠난 후 맨유의 주전 포워드는 웨인 루니의 차지가 되었다. 루니는 활동량, 역동성, 골 감각을 고루 갖춘 뛰어난 포워드였지만 전술적으로 큰 약점을 가진 선수이기도 했다. 루니는 전형적인 쉐도우 스트라이커 타입이었으므로 투톱 전술 하에서만 자신의 역량을 100% 발휘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퍼거슨 감독이 역습 중심의 전술과 크리스티아노 호날두를 포워드처럼 활용하면서 이러한 단점은 묻어지는 듯 했지만, 호날두의 이적으로 인해 루니의 약점이 다시 수면 위로 떠오르게 된다.


사실 투톱과 원톱을 모두 소화할 수 있는 공격수는 그리 흔치 않은데, 이는 원톱으로 플레이할 경우 포스트 플레이 능력과 수준 높은 키핑력, 2선 선수들에 대한 피딩 능력과 패싱력, 헤딩, 슈팅, 침투 능력, 골 감각 등 포워드로서 거의 모든 능력이 필요한 까닭이다. 많은 팀들이 투톱을 쓰는 이유는 투톱을 쓸 경우 '완벽한 원톱'에게 요구되는 능력들을 두 명의 포워드에게로 분산하는 것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본래 쉐도우 스트라이커였던 루니가 퍼거슨 감독의 유연한 전술 운용에 혼란을 겪은 것은 전혀 이상한 일이 아니다.


하지만 루니는 루니였다. 놀랍게도 호날두가 떠나고 자신이 팀의 중심으로 올라선지 반시즌 만에 원톱의 역할에도 적응하기 시작한 것이다. 원래 뛰어났던 활동량과 다재다능함을 그대로 유지한 채로, 포스트 플레이 능력과 키핑력, 득점력을 향상시키며 훌륭한 원톱 플레이어로 성장해 나가고 있다.

원톱의 중요한 역할 중 하나를 수행하고 있는 루니의 모습이다. 현대 축구에서 원톱은 전방에서 득점을 노리기보다는 활발한 움직임과 안정적인 볼 키핑으로 동료들이 2선에서 침투할 수 있는 시간을 벌어줘야만 한다. 루니의 폭넓은 활동 범위와 다재다능함은 이러한 요구에 완벽히 부응한다.
아스날 전에서 100골을 기록한 웨인 루니. 그 중 헤딩 골은 5골에 불과하다. 그러나 올드 트래포드에서 펼쳐진 최근 두 경기에서 루니는 두 경기 연속 헤딩 골을 작렬시켰다. 약점이었던 헤딩 능력도 발전하고 있다.
원톱 공격수에게 요구되는 또 하나의 능력이다. 자신의 빠른 스피드를 이용해 상대 수비의 뒷 공간으로 침투하는 장면인데, 본인이 말했던 대로 올 시즌 루니는 "상대 수비의 시야에서 사라지는" 능력이 크게 향상된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전방에서 볼을 키핑하고 후속 플레이를 연결하는 모습. 올 시즌 키핑력이 크게 향상된 루니는 전방에서 상대 수비를 등지고 볼을 키핑한 뒤 2선에서 침투하는 동료에게 날카로운 패스를 찔러주거나 자신의 개인기를 활용해 직접 마무리하는 두 가지 선택지를 다양하게 활용할 수 있게 되었다.


일각에서는 "루니 원톱은 곧 패배"라는 '루니 원톱 필패론'을 주장하기도 하지만 사실 그것은 루니의 책임이 아니다. 루니가 사이드로 빠져 주거나, 포스트 플레이를 펼치는 동안 적절한 공간으로 침투해서 골을 넣는 득점력 있는 미드필더가 부재하기 때문이다. 루니는 여느 시즌보다 향상된 원톱 플레이를 보여주고 있지만, 아직 2선 미드필더들의 득점력이 그에 미치지 못하고 있을 뿐이다.


현재 루니가 요구받고 있는 역할은 전 유럽을 통틀어서도 디디에 드록바, 즐라탄 이브라히모비치 외에는 딱히 눈에 띄는 선수가 없을 정도로 어려운 역할이다. 그러나 많은 활동량과 활동 범위, 다재다능함을 무기로 했던 루니는 포스트 플레이와 득점력을 장착하면서 점점 만능형 스트라이커로 성장해 나가고 있다. 매 시즌 향상된 모습으로 축구 팬들의 가슴을 설레게 만드는 웨인 루니. 루니는 '드록바의 길'을 걸어갈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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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0.02.04 07:04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비밀댓글입니다

  2. 영지버섯 2013.08.01 22:24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쭉 읽다 보니 재밌어서 마지막까지 왔네요 축구 칼럼 중에 가장 재밌는것 같아서 항상 즐기고 있습니다.


현상을 말하는 데 그치지 않고 본질을 통찰하기 위해 노력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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